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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사 이긍익
그의 아버지인 이광사李匡師, 1705년 1777년1는 당대에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나 그의 가문이 소론에 속해있던 까닭에2 이긍익의 나이 20 이긍익
이긍익李肯翊, 1736년 1806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다. 자는 장경長卿, 호는 완산完山 또는 연려실燃藜室이며, 한성부 출생이다. 이광사의 아들이다. 이긍익
이긍익의 부친 이광사. 이긍익은 아버지의 유배지인 완도군 신지도에서 연려실기술을 완성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긍익이 저술한 연려실기술 명기 황진이 실제 모습은 16세기 조선의 걸 크러시?
불을 붙여 책을 비추어 주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를 이광사가 손수 글씨로 써 이긍익에게 서재 이름으로 내려 준 것이다. 그런데 『연려실기술』이 이긍익의 1806년 11월 19일 『연려실기술』의 저자 실학자 이긍익이 세상을 떠나다.
- 이광사 초상
이광사李匡師, 숙종 31년1705 정조 1년1777는 조선의 문신, 서예가이며, 현대 한국학의 이광사 李匡師. 이광사 초상 보물 제1486호. 前 조선국 경기도 강화군 화도면 태수 前 朝鮮國 京畿道 江華郡 華道面 太守. 임기, 1750년 1월 20일 생애 · 작품 · 가계 · 참고항목 이광사
이광사 초상李匡師 肖像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의 초상화이다. 2006년 12월 2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86호로 지정되었다.시대 조선시대 이광사 초상
서예 이론서인 〈원교서결 圓嶠書訣〉·〈원교집선 圓嶠集選〉 등이 있습니다. 이광사 초상李匡師 肖像 조선시대/작가 신한평申漢枰17051777/견본채색662×53.2cm 이광사 초상李匡師 肖像
- 이광사 추사
추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아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추사17861856가 그토록 비난하였던 원교 이광사17051777는 모르는 사람이 추사가 촌스럽다고 했던 글씨체, 지금 주목받는 이유는
이광사李匡師 1705 1777는 자를 도보道甫, 호를 원교圓嶠라 했고 본관은 전주이다. 그의 집안은 증고조부 등이 모두 명필로 대대로 글씨의 추사 김정희 15 원교 이광사
친분이 있던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 해남 대흥사를 들렀다. 추사는 대흥사에서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글씨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직접 현판을 써주고 유배길에 추사유배지 秋史
보게된다. 그리고 그 편액 속에 담긴 자신의 교만과 독선을 깨닫게 된다. 추사는 명필 원교 이광사의 글시를 못알아보았으니 그의 현판을 다시 걸고 자신이 쓴 편액을 원교 이광사와 추사
- 이광사 현판
왼쪽부터 시계방향부안 내소사 대응보전 현판, 고창 선운사 정와 현판, 내소사, 금산사, 선운사에 들르거든 원교 이광사가 쓴 현판 글씨를 주의 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⑭원교 이광사의 글씨4
소론이 영조의 등극과 더불어 실각함에 따라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50세 되던 해인 1755년영조 31 소론 일파의 역모사건에 연좌되어 부령富寧에 유배 이광사李匡師
이광사의 현판 글씨 대흥사에 있는 이광사의 글씨 1840년 추사秋史의 나이 55세 되던 해 참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던 그가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 유배의 이광사의 현판 글씨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현판 양명학자 및 서예가. 청사려구淸詞麗句 맑은 문장에 수려한 문구 멋들어진 글에 글씨다. 이광사 현판